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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ound Beneath

우리가 선 자리,
조금 더 깊이.

홈페이지가 다 담지 못한, 마음다움이 믿고 저항하고 딛고 선 것들. 궁금한 분만, 천천히 읽으셔도 좋습니다.

You Are More

당신은 우울증'만'이 아닙니다.
당신은 ADHD'만'이 아닙니다.

당신은 어떤 이름표보다, 언제나 더 큰 존재입니다.
진단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름표 하나가 한 사람을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You, the Director

우리는 당신을
고쳐야 할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자기 삶의 이미지 조각을 모아 평생 하나의 작품을 지어가는 감독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영화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건축을 대하듯 당신을 봅니다 — 당신만의 역사와 구조, 당신만의 결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자체로 하나의 건축입니다.

The Lineage of Image · 상(像)의 계보

인간은 언제나,
상(像)을 지어 왔습니다.

마음이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새로운 주장이 아닙니다. 20만 년 전 인류가 처음 상상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오늘의 뇌과학까지 — 서로 다른 시대가 한 곳을 가리킵니다.

약 20–30만 년 전
인간, 상상하는 존재가 되다
호모 사피엔스의 마음에 '유동적 지성'이 열립니다.
서로 나뉘어 있던 지능의 영역들이 이어지며,
눈앞에 없는 것을 떠올리는 힘
— 상상이 태어납니다.
서로 다른 앎이 이어질 때, 인간은 비로소 은유하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 스티븐 미슨, 『마음의 선사시대』 (인지적 유동성)
약 3–4만 년 전
손이, 마음을 벽에 새기다
쇼베·라스코의 동굴 벽에 짐승과 사람이 그려집니다.
사자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얹은 '사자인간상' —
현실에 없는 것을 손으로 지어낸, 인류 최초의 상(像)입니다.
상아에 새겨진 사자인간은, 눈에 보이게 된 상상력 그 자체다. — 홀렌슈타인슈타델 사자인간상, 약 3.2만 년 전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간은 살아있기에 만들어 왔다. — 엘렌 디사나야케, 예술 인류학
약 1,600년 전
마음은 화가와 같다
동아시아의 경전이 마음의 본질을 한 구절로 새깁니다.
마음은 세상을 그려내는 화가이며,
짓지 않는 것이 없다고.
心如工畫師 能畫諸世間
마음은 화가와 같아, 능히 모든 세상을 그려낸다. — 『화엄경』 야마궁중게찬품
1935년
예술은, 진리가 열리는 자리
하이데거는 예술을 '재현'이 아니라 '드러남(비은폐)'으로 봅니다.
작품은 무언가를 베끼는 것이 아니라,
숨어 있던 것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열림의 사건입니다.
예술 작품 속에서, 존재의 진리가 스스로를 작품으로 지어 세운다. — 마르틴 하이데거, 『예술작품의 근원』
오늘
이미지는, 마음의 통화(通貨)다
뇌과학과 심리학이 오래된 직관을 확증합니다.
마음은 이미지의 끊임없는 흐름이며,
이미지는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방식'입니다.
뇌가 지도를 만들 때 이미지도 함께 창조된다 — 이미지는 마음의 주된 통화다. — 안토니오 다마지오, 『자아가 마음이 될 때』
이미지는 영혼의 모국어다.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방식이다. — 제임스 힐먼, 원형심리학

그래서 마음다움은,
이미지로 마음과 소통합니다.

20만 년을 이어온 인간의 문법으로,
말이 닿지 못하는 마음의 층에 닿습니다.

The Attitude · 아르텐션

인류는 언제나 상(像)을 지어 왔지만,
오늘, 그 짓는 태도가 갈립니다.

화면이 0.1초마다 이미지를 대신 그려주는 시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효율적으로 답을 냅니다. 그러나 마음을 짓는 데에는, 두 개의 전혀 다른 태도가 있습니다.

Gi · 기술

정해진 답을 정해진 절차로 빠르게 옮기는 태도. 효율적이고 기능적입니다. 한 세기를 세운 힘이지요.

그러나 기(技)가 유일한 태도가 될 때, 마음은 납작해집니다. 꿈을 물으면 하나의 답으로 굳고, 그 하나가 무너지면 함께 무너집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은 인공지능이 더 잘합니다.

Ye · 예술

무엇이 나올지 모른 채, 서두르지 않고 사려 깊게 바라보는 태도. 떠오르는 상(像)을 성마르게 처리하지 않고, 다층적으로, 다채롭게, 단계별로 벼리어냅니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성숙하고 다양한 마음이 피어납니다. 기술이 공학적 조작이라면, 예술은 시적 환대입니다.

Arttention = Art + Attention

예술을 통해 기울이는 미학적 주의

생각만으로는 마음의 기본 설정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손끝으로 상(像)을 붙잡아 형(形)으로 벼리는,
미학적 관조와 시적 태도를 통과할 때
비로소 마음은 제 모양을 되찾습니다.

마음다움이 3시간을 쓰는 이유,
서두르지 않고 함께 망설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정은, 우리 이름 안에 이미 있었습니다.

마음

떠오르는 이미지.
마음의 본래 언어.

多 · 藝

다층적으로, 다채롭게
벼리어내는 과정.

손끝에서 움튼
제 모양.

마음(象)이, 다(多)의 과정을 거쳐, 움(形)트는 것.
마음다움은 그 세 음절이, 곧 그 여정입니다.

아르텐션은, 우리가 살아온 방식입니다.

  • 자격증의 피라미드를 떠나, 우리만의 아지트를 꾸렸습니다.
  • 특정 이론을 이식하지 않고, 만들고 벼리는 과정으로 창조해 왔습니다.
  • 열여섯 번의 워크숍으로, 당연한 규범에 도전해 왔습니다.
  • 50분 상담 10회를 넘어, 단 한 번이라도 오롯한 3시간의 세션을 이어옵니다.

우리 자체가 아르텐션입니다.

What We Resist

마음다움이 저항하는 것

01
마음을 진단명으로 가두는 것
진단 대신, 탐색합니다.
02
마음을 최적화하려는 것
마음은 흐르는 것입니다.
03
예술을 재능의 것으로 보는 것
살아있기 때문에 만듭니다.
04
사람을 수치와 서열로 보는 것
그 자리에서, 우리는 저항합니다.

A Quiet Crack

잘났다고 유난 떨지 않습니다.
다만 묵묵히, 조용히.

세상에 작은 미학적 균열을 냅니다.
전체로 보면 가느다란 실금이겠지만,

그 실금으로부터 거대한 균열이 시작됩니다.

한 사람의 작은, 마음다운 변화로부터.

아름다움은 결국, 세상 만물의 '다움'에서 옵니다.

여기까지 함께 읽어주셨다면,
이미 마음이 조금 움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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